
솔직히 저는 정어리를 이름만 알고 실제로 먹어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냥 싸고 별로인 생선이라는 막연한 인식만 있었는데, 남해안 여행 중 우연히 들어간 생선 조림 전문점에서 처음 제대로 맛을 봤습니다. 그 경험이 정어리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꿔놨습니다.
남해에서 우연히 마주친 정어리 조림
가족들과 남해안 여행을 갔던 날이었습니다. 독일 마을을 둘러보고 바다를 한참 구경한 뒤 점심을 먹으러 식당을 찾아다녔는데, 전날 저녁에 이미 회를 먹었던 터라 회는 패스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바닷가 쪽이라 그런지 눈에 띄는 식당은 죄다 횟집이었습니다. 식당을 찾아 골목을 한참 돌아다니다 생선 조림 전문점이 하나 보였고, 그냥 들어갔습니다.
메뉴판을 펼치니 멸치와 정어리가 나란히 적혀 있었습니다. 멸치는 그나마 먹어봤지만 정어리 조림은 솔직히 이름만 알던 음식이었습니다. 평소에 정어리를 파는 곳 자체를 거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정어리 조림을 주문했습니다.
나온 요리를 보니 생김새가 꽁치랑 꽤 비슷했습니다. 국물부터 한 숟가락 떠먹었는데, 얼큰한 고등어조림 양념과 분위기가 닮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작 생선 살을 먹어보니 꽁치보다 부드럽고, 살이 많은 큰 멸치 같은 느낌이랄까요. 제가 직접 먹어보니 예상보다 훨씬 담백하고 먹기 편했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생선이 왜 이렇게 안 알려져 있나 싶었습니다.
정어리가 외면받는 이유와 숨겨진 영양소
한국에서 정어리는 묘하게 찬밥 신세입니다. 전쟁 이후 가난하던 시절, 워낙 값싼 단백질 보충용 생선으로 쓰이던 이미지가 지금까지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먹을 거 넘치는 지금 세상에서 굳이 정어리를 찾는 사람이 드문 것도 그 연장선입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찾아보고 나서 느낀 건, 정어리의 영양 구성이 절대 무시할 수준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메가-3 지방산(EPA·DHA)이 풍부합니다. 여기서 EPA·DHA란 체내에서 합성이 어려운 필수 불포화지방산으로, 혈중 중성지방 수치를 낮추고 심혈관 건강을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등어나 청어와 비교해도 오메가-3 함량이 크게 뒤지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또 주목할 점은 단백질 밀도입니다. 정어리는 작은 몸집에 비해 단백질 함량이 높은 편입니다. 100g당 단백질 함량이 약 20g 내외로, 체중 관리나 근육 보강을 목표로 식단을 관리하는 사람들에게 가성비가 뛰어난 식품입니다(출처: 농촌진흥청 국가표준식품성분표). 가격 대비 영양 효율로 따지면 연어나 참치에 전혀 꿀릴 게 없습니다.
정어리가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신선도 유지가 까다롭다는 데 있습니다. 등 푸른 생선 특성상 지방산화(脂肪酸化)가 빠르게 진행됩니다. 지방산화란 생선의 불포화지방산이 공기와 만나 산화되면서 비린내와 변질을 일으키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래서 유통 과정이 길어질수록 품질 저하가 심해지고, 이것이 소비자들에게 '정어리는 비리다'는 인상을 심어준 원인 중 하나로 보입니다.
정어리 손질법과 요리별 맛 차이
사실 정어리는 손질이 어렵기로 유명합니다. 청어목(Clupeiformes)에 속하는 생선으로, 청어목이란 청어과·멸치과 등을 포함하는 분류군으로 공통적으로 잔가시가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정어리도 마찬가지로 척추 주변에 굵은 가시 외에 잔가시가 나뭇가지 모양으로 뻗어 있어 손질이 상당히 번거롭습니다.
제가 정보를 찾아보다 어느 생선 손질 전문가가 정어리 회를 손질하면서 "다시는 안 한다"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접했는데,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됐습니다. 장가시 하나하나를 핀셋으로 뽑아야 하는데, 다 뽑았다 싶어도 또 나오는 구조라 살이 망가지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집에서 정어리를 요리할 때 현실적으로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 요리법별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조림: 잔가시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아도 조리 중 흐물흐물해지기 때문에 가장 접근하기 쉽습니다. 제가 남해에서 먹었던 방식으로, 특유의 기름기가 양념에 녹아들어 국물이 깊어집니다.
- 튀김(가스): 척추뼈만 발라내고 통째로 튀기면 잔가시가 열에 의해 부서져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전갱이 튀김(아지후라이)보다 지방 풍미가 진하지만 담백한 편에 속합니다.
- 회: 손질 난이도가 가장 높지만 신선도가 뒷받침되면 기름진 풍미와 부드러운 식감을 동시에 즐길 수 있습니다. 고추냉이를 충분히 곁들이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고등어나 꽁치 비린내를 못 참는 분이라면 회나 구이는 피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조림이나 튀김으로 먹으면 비린 느낌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등 푸른 생선을 평소에 잘 못 드시는 분들도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어리 개체수 변화와 앞으로의 가능성
국내 정어리 어획량은 최근 10~20년 사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기후 변화와 해양 환경 변화로 정어리 무리가 적정 수온과 용존산소량(DO)을 찾아 다른 해역으로 이동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서 용존산소량(DO, Dissolved Oxygen)이란 물속에 녹아 있는 산소의 양을 말하며, 이 수치가 낮아지면 활동량이 많은 등 푸른 생선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습니다.
실제로 2022년에는 경남 마산만 일대에서 정어리 수만 마리가 집단 폐사하는 사건이 발생해 크게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산소가 부족한 저산소 수괴(水塊)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됐으나, 그 저산소 수괴가 왜 형성됐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해양수산부도 연근해 생태계 변화를 모니터링하며 원인 규명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출처: 해양수산부).
반면 일본에서는 정어리가 초밥과 회 재료로 폭넓게 활용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정어리 통조림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우리나라만 유독 이 생선에 냉담한 셈입니다. 신선 유통 인프라가 갖춰지고 손질법이 조금 더 대중화된다면, 정어리는 지금보다 훨씬 주목받을 수 있는 생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맛보다 인식의 문제입니다.
결국 정어리는 손질이 번거롭고, 이미지가 좋지 않아 외면받고 있지만 영양과 맛 면에서는 충분히 재평가받을 자격이 있는 생선입니다. 조림이나 튀김처럼 접근하기 쉬운 방식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저처럼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난 생선 조림 한 그릇이 생각을 바꿔놓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영양·의학 조언이 아닙니다.